사람들이 사진 찍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포즈 중 하나가 엄지와 검지 두 개로 브이자를 그리면서 하는 포즈를 가장 많이 합니다. 이런 포즈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중 처칠이 사진을 찍을 때 브이를 그리면서 사진을 찍은 것이 유행하게 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과연 어떻게 유래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백년전쟁 유래설
많은 블로거들이 설명하는 이유로 백년전쟁 유래설을 꼽습니다만 사실이 아닙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1339년 부터 1453년까지 벌였던 백년전쟁에서부터 기원했다는 주장인데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할 당시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활을 쏘는 궁수병의 실력이 더 뛰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입장에서는 영국의 장궁을 다루는 궁수들이 프랑스 군대에 피해를 가장 많이 입히는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포로로 잡을 경우 검지와 중지를 잘라 다시는 활을 쏘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영국에서는 전쟁 중 상대방 병사들을 향해 난 아직 손가락이 안잘렸다고 조롱하기도 하고, 전장에서 돌아온 사람이 손가락 두 개를 보이며 아직 손가락이 안 잘려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검지와 중지로 브이자를 그려 보이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영국사람인 처칠이 브이자를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블로거들이 있지만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도 않고 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브이자 포즈가 백년전쟁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처칠의 브이자 포즈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수상 처칠이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검지와 중지로 브이자를 많이 그렸습니다. 이러한 처칠의 브이사랑 사진은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처칠이 브이자를 그리면서 찍은 사진이 많았음에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 브이자를 그리면서 포즈를 취하는 것은 처칠 때문이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브이자 포즈 확산
1960년대 핵무장 반대운동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 문화가 일본으로 스며들어 1970년대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이 1980년데 일본의 대중문화가 퍼지면서 브이자를 그리는 문화도 동아시아로 퍼지게 되어 사진을 찍을 때 브이자 포즈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이자가 승리를 상징하지도 않고 평화를 상징하는 것도 아닌 그냥 활기찬 사진을 찍을 때 포즈로서 보편화 되었습니다.
브이자 포즈 금지 사항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브이자 포즈가 금지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투표를 하고 난 후 또는 선거기간 동안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하여 금지하고 있습니다
브이의 변형
브이는 검지와 중지를 위로 들어 표시하는 것인데 일본의 갸루(얼굴을 검게 칠하고 입술을 희게 칠하는 등 이상한 화장법을 한 일본 여자애들을 이르는 말로 영어 걸 발음이 안되어 갸루라고 한다.)들이 브이를 거꾸로 들어 포즈를 취하는 것을 갸류브이라고 하여 요즘 연예인들이 사진 찍을 때 많이 따라 하고 있습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로구이 메로가 뭐지? (0) | 2022.07.21 |
---|---|
화장실 청소 쉽고 깨끗하게 하는 방법 (0) | 2022.07.13 |
결혼 답례글 작성법과 예시 (0) | 2022.07.06 |
초당옥수수 맛있게 먹는 법 (0) | 2022.07.04 |
중고차 거래시 꼭 알아야 할 침수차량 구별법 (1) | 2022.07.04 |
댓글